본문 바로가기

스타트업/조직문화

재택근무 2년차의 일상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2년 차.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점이다.

암스테르담 카페 YUSU에서


평일 아침 8시부터 9시30분까지 새로 발굴한 카페에서 라테를 홀짝거리며 평온하게 일기를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업무시간을 30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것에 불과했음에도 ‘농땡이 피운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한동안은 상당히 쫄려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아니랄까 봐, "9시 출근 5시 퇴근"을 '어긴다'는 생각에 걱정도 죄책감도 많이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도 나는 일을 왜 꼭 9시에 시작해야하는지, 오전 7시에 미리 일을 해두고 아침을 즐기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계약서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의 시간에 주 40시간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고, 그 누구도 "9시 출근 5시 퇴근"을 지켜야 한다고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9시 출근 5시 퇴근"의 업무 방식에 공식적으로 의문을 던진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으레,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다수를 따라 업무시간을 맞추어왔던 것이다. 이직 후 7개월도 안 된 직원이 감히 회사의 기존 업무 방식에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나 역시 조용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

평일 오전 9시, 사람들로 붐비는 카페 모습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난 이후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내 팀리더가 업무 시간을 유연하게 쓰기 시작한 것이다. 갓 돌을 지난 아들을 둔 그녀는 아침 7시부터 9시 정도까지 업무를 보고 아들 등원 준비를 돕는다. 그리고 10시에 업무에 복귀한 뒤 4시 정도까지 일을 한 후에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돌보고 저녁 7시부터 8시에 업무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직속 리더가 그렇게 '모범'을 보여주니 나도 시도를 안해 볼 수 없지.
그렇게 일주일에 이틀 정도,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집에서 업무를 본 뒤 8시부터 동네 카페로 향하는 즐기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음 편하게 카페에서 보내는 아침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팀원들이 나를 찾지는 않을지, 나만 이렇게 즐기고 있어도 되는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1:1 피드백 시간에 한 번은 팀 리더에게 고해성사를 하듯이 내가 느끼는 죄책감과 왠지 모를 두려움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그때 그녀가 해준 말:

“I am confident that you will make sure you get done what you wanted on beforehand. So if you finish early, that’s also fine. I trust you.”
(나는 너가 해야 할 일을 미리 잘 끝내 둘 거라고 생각해. 일이 일찍 끝나면 일찍 퇴근해도 돼! 난 널 믿어)


와................!!!!
내 리더가 나를 믿어준다는데, 나를 믿지 못하는 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까지 의심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인가?

여유를 즐기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했다


누군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이 목소리를 나는 조금씩 무시해보기로 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조금은 더욱 편안하고 떳떳한 마음으로, 평일 아침에 이틀 정도는 카페로 향한다.
리더가 나를 믿어주니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행동으로 보여줬었으니까,
이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말을 해주면서 말이다.

재택근무 2년차 여전히 적응하고 나에게 맞게 조율해나가고 있는 중이지만 꽤나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