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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조직문화

대표가 가진 힘

오랜만에 서울에 들어갔을 때, 3년 전 같은 공유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 지인분을 만났다. 소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던 A씨는 벌써 5년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A씨는 최근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의 영향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 대표와의 갈등과 이로 인한 대표의 폭력적인 언행으로 충격을 입고 재택근무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A씨가 다니는 회사는 나도 오래 전부터 지지하고 선망해오던 곳으로 대표와도 종종 공유 사무실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즘에는 보기 드문 성숙한 대표라고 생각던 터라 나 역시 A씨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사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갈등을 가능한한 원만하고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던 대표는 조용히 감정을 추스리고 있던 A씨를 찾아가 빠른 갈등 해소를 촉구했고, 이에 대해 시간을 달라며 정중히 대화를 거절한 A씨에게 대표는 "아... 씨X..."라는 욕설을 남기며 그 자리를 떴다.

 

자신이 범한 잘못으로 죄책감에 시달린 대표는 A씨를 만나 신속히 사과를 하고 일을 털어버리고 싶어했는데 이것이 A씨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었다. A씨가 스스로 상처를 돌볼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몇 번이고 몇 년이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피해자에게 되려 빠르게 상처를 수습하라는 이야기로 들려 몹시 불쾌했다.) 아니나 다를까, A씨에게 개인적인 사과를 마친 대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 조직원들과 어울렸으며 A씨는 이런 대표의 모습을 직시할 수 없어 재택근무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번의 실수를 가지고 '가해자'라고 낙인 찍은 것에 대해 대표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정도로?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는데. 게다가 회사가 학교도 아니고 한 조직원의 기분이 풀리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대표는 회사의 얼굴이자 비전이다. 그런 대표가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은 회사와 회사가 가진 비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로서의 나와 욕설을 할 정도의 감정을 가진 나를 철저하게 구분해서 신중하게 행동을 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대표는 본인이 가진 힘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필요가 있다. 대표가 조직원에게 자신의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이 가진 권력의 비대칭을 의미한다. (감히 조직원이 대표에게 '이만하면 제 사과를 받아들이시고 그만 넘어가세요!'라 말할 수 있겠는가?) 긴급한 의사결정이 절실할 때에 이와 같은 권력의 비대칭은 조직 내에 효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함부로 대표의 권력이 작동하는 순간 이는 조직원에 대한 폭력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

 

회사 대... 뿐만 아니라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이 '리더'의 힘이 조직, 팀 내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