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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조직문화

'각오' 없이 제안할 수 있는 조직

주말을 앞둔 금요일 늦은 밤, 스타트업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친한 친구가 단톡방에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애들아.. 나 오늘 대표한테 엄청 장문의 메일을 쓰고 왔다...
지금 진행되는 사안들 중에서 아니라고 생각되는게 있다고 말야..
나는 일이 힘든것도 괜찮고, 사람 힘든것도 괜찮은데..
조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 노력해도 개선될 희망이 보이지 않는건
진짜 못참겠다고 그래서 말한다고..
문제인 것과 내가 생각하는 방안을 썼어..
그리고 퇴사한다는 말, 이걸로 저 해고하셔도 상관 없다는 말도 썼었는데,
마지막에 지웠어…..
우리 팀 사람들한테 애정이 없었다면 퇴사는 일도 아닐텐데.. 에휴"

 

며칠 동안 혼자 고민의 고민 끝에 회사 대표에게 직접 메일을 써 보낸 모양이었다.
주말을 앞두고 팀장으로서 조직을 위해 메일을 쓸 수 밖에 없었을 정의감 넘치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까지 조마조마했던 주말이 끝났다.


다행히도 바로 다음 주 월요일날, 회사 대표가 친구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듣고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허탈감이 찾아왔다. 며칠을 고민했을 친구의 심리적 부담과 압박을 생각한다면 대표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친구의 의견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친구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간의 결정들을 조율할 것이었으면 왜 대표는 몇 주 전 회의에서 그 의견을 듣지 않았던 것일까? 들을 자리 자체를 마련했던걸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표가 방향을 틀기로 한 데에는 단순히 친구의 의견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확정되기 직전까지 메일을 보내 설득한 친구의 의견에 무게를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직원의 의견은 '퇴사를 각오'하고 말할 정도로 무게감이 있을 때에야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걸까?

 

물론 가볍게 던진 의견과 진중하게 내놓은 의견들이 똑같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직원이 퇴사 및 해고의 진을 치고 나서야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은 건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진솔한 목소리를 내는데까지 고민하고 머릿속에서 수십번 초고와 퇴고를 반복하고 난 이후에야 겨우 그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책임감 있는 조직원들을 이끄는 조직의 리더들은 알아야한다. 아무리 느슨한 위계질서가 있는 회사의 조직원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친절하고 따뜻한 상사를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직원의 입장에서 자신의 요구나 의견을 내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내 의견의 효용성,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팀 내에 가져올 반향, 의사 소통의 방식 등을 두고 고민의 고민 끝에 의견을 내놓기 때문이다.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사회화된 조직원들은 오죽할까? 그들은 은연 중에 리더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목소리를 아예 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조직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창의적이고 활기가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머릿 속 쳇바퀴를 벗어나 직통으로 회의실에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다음의 전제조건들을 규범처럼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어야한다.

 

1. 조직 내에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장이 있다.
2.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리더가 어떤 의견이라도 소중하다는 입장을 태도로 보여준다.
3. 리더가 적절하지 못한 의견에 대해서는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로 처리한다.
4. 리더가 의견을 사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공적인 결과와 결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리를 만드는 데에 있어 수평적 리더십을 지향하고 이에 익숙한 대표들도 마찬가지이다. 들어오는 조직원들은 수평적 리더십을 바라고 온 것이지, 모두가 그러한 리더십의 작용방식에 이미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조직의 문화에 맞는 사회화가 별도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도 친구네 대표는 그 날 신속히 친구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수용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행동에 옮기기까지 했다. 이를 전해들은 친구들은 단톡방에서 '역시! 젊은 리더라 그런지 가망이 있는 조직이다!'라며 모두 신이 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겠지. 조직원이 목소리를 낼 때에 '각오'를 하면서까지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조직원이 무게를 싣지 않아도 대표가 무게감 있게 조직원의 이야기를 듣는 그런 조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