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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조직문화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상사에 대하여

출처: pexel

 

이직한 지 1년이 지났다.

일이 재미있고 양적 연구 방법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 다만 회사의 주요 서비스인 광고를 테스팅하고 캠페인의 활동을 평가하는 일이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이직은 준비하고 꿈꾼다.

 

그럼에도 회사 조직 문화가 매우 만족스러워서, 당분간은 이곳에 나를 맡겨놓아도 좋겠다는 느낌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기록해두려는 것은, 직속 상사는 아니지만, 같이 일하는 영국인 컨설턴트 Simon에 대한 이야기이다.

 


 

50대 중후반인 Simon은 내가 처음 이직을 했을 때부터 가장 많이 함께 프로젝트를 해온 컨설턴트이다. 

나는 뭐 본투비 한국인인지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대할 때는 긴장을 하고 공경심이 디폴트로 깔리는 편이다.

그래서 질문을 하거나, 요청을 할 때에도 몇 번을 고민하고, 내적 고함을 몇 번 지르고 난 뒤에 마음을 가다듬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곤 했다. 

 

그런 Simon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본인이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공유해주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이다.

 

예를 들자면 

  • "아, 이번 프로젝트는 쉽지 않았어. 나도 고생을 좀 했어." 
  • "휴. 이 클라이언트는 참 세세한 것에까지 참견을 하고 싶어 하네" 
  • "나는 그 클라이언트는 좀 터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참 나이스 하더라." 

Simon과 함께 일을 하면서 나는 컨설턴트의 숙련된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감정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 특히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감정 소통방식에서 대단한 점은 프로페셔널함(공적 관계)과 퍼스널(사적 관계)이라는 두 가지 경계의 밸런스를 참 잘 맞춘다는 점이다.

 

일단, 그의 감정 표현 방식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구구절절 본인의 감정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보통은 짧게 1-2 단어로 본인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서 그친다.

그리고 적당히 끊어내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는 사적인 감정을 공유하면서 친밀감을 형성하면서도, 항상 프로페셔널함을 유지한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그는 상대방에게 무리한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공유하는 본인의 의견과 감정은 철저히 본인의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어떤 클라이언트에 대해 내가 본인과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클라이언트와의 경험에 대해 내가 Simon과는 다른 이견을 제시했을 때에, Simon은 '오 그럴 수도 있구나'라며 받아들이고 넘어갈 뿐만 아니라, 실제로 나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보려는 시도를 해본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표현하되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스킬이지만, Simon만큼 체화를 잘 한 사람과 직접 일을 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에는 정말 신기했다.

프로젝트를 할 때 짜증이 나거나 성가시다고 말을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굉장히 평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톤도 그대로였고, 심지어는 웃고 있었다. 

불편한 감정을 털어놓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물론 Simon에게도 장단점은 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ㅎㅎ

(가령 Simon은 컨설턴트 중에서도 창의적인 편에 속해서, 프로젝트가 즉흥적인 타임라인으로 진행되기 쉽다...) 

그래도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상사랑 일할 수 있다는 건 참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