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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기/심리학

심리상담 후기 | 심리상담에 앞서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image: Pexels

시간당 8만 원 정도로 책정되는 심리상담의 가치는 적정한 것일까?

 

사실 이에는 정답이 없다. 이 가격에 사는 사람이 있고 파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가격 적정선이 나타났을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는 8만 원을 기꺼이 지불할 정도로 심리상담에 가치를 느끼고 있기에 이런 가격이 책정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 당 8만 원은 일반 직장인들의 입장에서 그리 쉽게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매주 1시간 씩만 받아도 금방 32만 원이다. 특히나 앞선 <언제 심리상담을 받아야할까?> 포스팅에서 미리미리 받아 보는 심리상담을 추천한 사람으로서 시간당 8만 원은 상담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지 않는 이상 선뜻 지갑을 열기 쉽지 않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무언가 큰 일이 닥쳐서 심리상담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이 아닌 바에야 그 시간과 노력, 돈으로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은 세상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심리상담을 받게된 계기는 누가 보기에는 '이런 일로?' 싶은 일이었다. 시작은 누구나 경험할 법한 연인 관계에서의 흔한 트러블이었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20대 초반'에나 할 법한 상대방에 대한 실수나 오해들이다. (사람들이 많이 연애를 해보라는 이유를 그제서야 몸소 깨달았다.) 그런데 연애 1년 반의 기간 동안 그 트러블은 잠잠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는 법은 없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트러블이 반복되며 그 정도가 누그러지지 않음을 느끼고 나는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나 역시 월급쟁이로서 8만원을 선뜻 지불하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 돈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서 마음을 위안받았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책을 사서 마음을 달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트러블들은 이러한 방법들이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시간을 8만원이 아깝지 않았다고 느낄 정도로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어폐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심리상담은 전문 선생님이 진행하는 시간인데 내가 뭘 더 할 수 있지? 선생님이 내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진단을 해준 다음에 그에 맞는 치료법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충분히 공감한다. 특히나 심리적인 여유가 없을 때에는 내가 자발적으로 상담에 에너지를 투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고 내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는데에 집중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처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해보려는 사람들, '치료' 목적 보다도 '예방' 차원에서 심리 상담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의 여유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1. 상담을 받기 전, 내가 언제 무엇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기록한다. 아주 사소한 것도 괜찮다. 불편함, 짜증이 올라올 때마다 그 원인과 상태를 간략하게 적어둔다. 그게 정말 사소한 일이었는지 아닌지는 선생님과 함께 판단한다. 이와 관련하여 선생님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줄 수록 그 진단의 정확도가 올라간다. 
  2. 미리 적어둔 리스트를 살펴보고 이번 주에 내가 가장 이야기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본다. 그리고 상담 시작 전 선생님에게 내가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어필한다. (이러한 정보마저도 선생님이 나를 진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3. 상담을 받을 때에는 그 시간에 집중한다. 
  4. 상담이 마무리 될 때에 선생님께 다음 시간까지 '내가 해볼 수 있는 연습'이 있는지 여쭤본다.   
  5. 상담을 받고 난 이후에 다음 두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대답해본다. 기록을 해두면 나중에 변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에 더더욱 좋다.   
    1. 이번 시간, 선생님이 해준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2. 이번 시간, 내가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상담을 접근했던 것은 아니다. 8만원이 충분히 나를 돌보는 데에 쓰인다고 느꼈고 가치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심리상담/코칭을 받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그 가치를 조금 더 가시화해서 나를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고 이에 심리 상담의 과정을 심플한 체계로 정리해보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내가 심리상담 과정을 디자인하고 난 이후 상담 후 내 만족도는 더욱 더 높아졌다. 

 

상담 후에는 진이 빠져서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나 역시 그러하다. 1시간 넘게 집중을 했으니 이는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서 위의 리스트 중 적어도 5번 만큼은 5분을 투자해서 시도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