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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기/심리학

심리상담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 '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에 대한 고찰

사진출처: pexels.com

"00해야할 것 같아요라는 표현을 자주 쓰시는 거 아셨어요?" 

첫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선생님께 왜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나서 채 10-1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도 모르고 있던 패턴이었지만 그렇다. 나는 '00해야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자주한다. 입 밖으로 내놓기도 자주 내놓지만, 머릿속에서 나 스스로에게 말을 할 때에도 이 표현을 자주 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 이 때 쯤이면 승진을 해야할 것 같은데!' 

'서로 좋아하면 기념일은 챙겨야하지 않나?' 

'왠지 모르겠지만 

'친구라면 돈을 빌려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를 다음과 같은 문장형식으로 나타내볼 수 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A (조건문) 라면 B 해야 (당위문)>> 할 것 같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왠지 모르겠지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즉 나는 이 문장에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에 따르면 이렇게 '당위'가 많은 사람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준들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상태로 내 기준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나의 행동은 '내 것' 없이 남의 기준에 따라 휩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줄 뿐만 아니라 요상한 긴박감까지 불러일으키며 선택을 종용하게 만든다. 삶이 무겁고 버거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나는 '외부에서 부여하는 가치'를 거부하고 '내 것'을 선택하는 것만이 올바른 해답인가? 사실 아니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왔지만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게 쌓였다. 이를 알아보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 아니면 '도'가 되어버리면 더욱 선택하기 힘들어져요. 막연하게 사회가 부여하는 기준을 따르면 내가 제대로 살지를 못하고, 그렇다고 내 기준만을 고집하게 되면 사회와 어울려서 살 수가 없게 되거든요.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외로움을 타는 분이신데 기준들 사이에서 적응해나가는 연습을 하시는 게 더욱 현명한 방법입니다. 

이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사고방식을 연습해보라고 권해주셨다. 

  1. 당위가 주는 느낌을 알아차리기.
    ('00해야할 것만 같아')라는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느낌으로 알아채고 의식적으로 이 사고 프레임을 인지해내본다. 
  2. 당위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 확인해보기. 
    (휴가 때 왠지 아무 것도 안해야할 것 같은데 나는 왜 자꾸 일을 하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휴가 때 아무 것도 안해야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지, 이는 정말 꼭 그래야만 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예시가 될 수 있다.
  3. 당위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내 문장으로 다시 써보기. 
    위의 예시를 따라 생각해본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휴가를 보내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쉼을 누리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위적인 조건을 풀어나가볼 수 있다. 

최근에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경우로 예시를 들어보겠다. 나는 망설였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나에게는 껄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친구라면' 마땅히 그리고 흔쾌히 돈을 빌려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인지하고 나자 망설임이 주는 스트레스를 잠시 미뤄두고 나는 이제 '친구라면 돈을 빌려줄 수 있어야한다'라는 조건문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내가 영화나 티비, 뉴스, 소설, 부모님의 행동양식 등을 통해 보고 배운 것으로 사회적으로 형성된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 선뜻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에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친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내가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금액이라면 얼마든지 몇 년 이상 알고 지내 온 친구에게 돈을 빌려 줄 수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즉 '친구라면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조건문을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조건문으로 변형해본 것이다. 그러고나자 나는 흔쾌히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었고 망설임에서 느끼던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