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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그

독서로그 |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고쿠분 고이치로 저 | 한권의책 | 2014년 10월 31일 | 원서 : 暇と退屈の倫理學 (2011년도 출판)

평점: 4.5/5


지루함을 인류학, 경제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한 서론이 조금 길게 느껴졌지만 만족스러웠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 하이데거의 논리를 깊게 분석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한가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기에 당연한 감정 중 하나이다. 변화를 빠르게 습득해서 안정적인 습관을 만들어내는 것을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보는 저자에 따르면 한가함은 일상적인 습관이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한가함을 마주할 때 기분전환할 거리를 생각해내고 이를 즐기면서 한가함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의 모습이다.

 

한가함과 지루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가함(=지루함)을 없애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보다 고귀한 목적을 향해 행동을 결단해야하는 존재여야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로 한가함(=지루함)을 없애려고 하는 행위는 역으로 당위적인 생각의 노예가 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때 인간은 당위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꽤나 위안을 받았다. 사이먼 시넥의 'Why로 시작하라'에서 모기 겐이치로의 '이키가이'까지 최근 자기계발 서적들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의 저자 고쿠분 고이치로의 논리를 빌어 이를 살펴보자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일에 집중하려는 것 역시 인간이 느끼는 지루함, 나아가서는 삶이 수반하는 허망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그저 한가함과 기분전환을 반복하며 습관을 깨부수고 만들면서 환경에 적응해가는 존재이다. 물론 '어떤 계기'로 한 가지 주제나 목표에 몰두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삶의 형태가 '인간이 본래 존재해야할 방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처럼 한가함과 지루함을 하나로 퉁쳐서 바라보고 지루함을 없애버려야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로 바라봐왔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