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이었나? 한국에서 잠시 귀국해서 부모님 댁에 머무르며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아침에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연예 기사를 훑어보고 있는데 아이유가 강남에 130억 자리 집을 현찰로 구매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130억을? 현찰로?'
평소에 아이유라는 가수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나였지만, 기사를 보고나니 놀라웠고 부러웠고 화가 났다. 그리고 분명하게 느낀 것은 왠지 모를 패배감이었다.

나보다 어리고 재능이 확실한 것도 부러웠지만, 노력에 대한 대가가 이렇게 크게 차이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 아니, 생각해본 적은 있었겠지만, 이렇게 가깝게 와닿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유가 노래에 재능이 있고, 오늘날의 성취를 향해 노력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노래를 잘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만한 일인가?
그렇다면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과, 시를 특출 나게 잘 쓰는 것 사이에는 왜 이렇게 큰 경제적 격차가 있는 걸까?
노래라는 더욱 잘 팔리는 매체를 선택한 대가가 이렇게나 다르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기괴해보이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보상 구조에 대해 화가 났고, '요즘에는 벼락 거지가 된 느낌이야'라고 말하던 친구의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상상해보았다. 130억자리 집에 사는 느낌은 어떤 걸까?
높은 천장에 햇빛이 잘 드는 거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뷰,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인테리어 소품들...
'완전 행복하겠다~ 에이씨 부럽네!'까지 생각에 이르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 집에서 끓여먹는 라면은 더 맛있을까?'
라면 맛이 그리워서 예상되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먹으려던 나다운 상상이었다. 뭔가 재미있는 질문이어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상상해보았다. 130억 자리 집에서 끓여먹는 라면은 정말 더 맛있을까?
'....! 아니. 그 맛은 똑같을거야!'
내가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물론 처음 한 두 번은 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런데 라면은 라면인 걸. 어디에서 먹든 그 맛은 다를 수가 없잖아.
'그렇다면 아이유가 130억 자리 집에서 라면을 먹었을 때 느끼는 그 순간의 행복과, 내가 부모님 댁 부엌에서 라면을 먹었을 때 느끼는 그 순간의 행복 사이에는 과연 차이가 있을까?'
이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라면을 먹는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최대치가 100이라고 한다면, 아이유가 라면을 먹는 순간 느끼는 기쁨의 최대치 역시 100 이상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유도 나도 똑같은 종, 다시 말해 인간이기 때문이다.
소득의 격차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 이를 조절하는 호르몬의 활동까지 더 활발하고 특출 나게 바꿀 수는 없다는 말이다. 기쁨, 행복,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의 폭은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한계로 인해 그녀의 것과 내 것이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이상하게 몸과 뇌에 가득했던 긴장이 풀렸다.
130억 자리 집도 처음에야 신이 나고 즐겁지, 매일 같이 그 집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면 내가 집으로 향할 때 느끼는 편안함과 별다를 차이가 없을 거야. 그 집에서 먹는 라면의 맛도 마찬가지이고.
아래 그림은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불안>에서 그린, 성취 뒤에 오는 만족감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는 우리 모습이다.

나는 너무도 쉽게 그녀의 성취가 가져다 줄 감정적 보상에 대해 과대망상을 했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인 성취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했다. 그녀도 나도 우리 모두 인간이기에 느끼는 희로애락은 피할 수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전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비이성적으로 많은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는 현실의 사회 구조는 한탄스럽고,
아이유가 소유하는 130억 자리 집 (혹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주는 한시적이지만 확실해보이는 안정감)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 집에서 맛있게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는 나 역시 꽤나 행복한 사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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