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 나에 대해 안다는 것
제일 처음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에,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실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아요. 그렇지만 그건 나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알고 있는 것이죠. 사실 나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원리'들을 몇 가지 되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 몇 가지 '원리'들을 내가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에요.
나름 20대를 여행도 다니고 휴학도 하고 도전도 해보며 '자아에 대해 탐색'하고 나에 대해 많이 알아오는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간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고찰하지 않고 무작정 나에 관한 수많은 사실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면서 나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매우 어리석고 오만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대중에 나와있는 심리학 에세이/서적들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많은 책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찾아야하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해주는 책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사실'들을 아는 것과 나에 대한 '원리'를 아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토대를 재구성해서 정리해보았을 때 이는 다음과 같다.
나는 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1. 나는 선이 그려져 있는 노트북을 좋아한다. |
이런 사실들은 얼마든지 열거해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공통적으로 '선이 그려져 있는 노트북', '직설적인 화법', '표를 그려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얼핏 보기에는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위의 세가지 사안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고 나는 이 성질을 좋아하고 있다. 이는 곧 나는 이 성질을 가진 다른 것들도 좋아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선이 그려져 있는 노트북'과 '직설적인 화법', '표를 그려서 설명하는 것'의 공통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노트북 ∽ 화법 ∽ 설명하기 → "나는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
이렇게해서 매우 구체적인 사실들로부터 추상적인 개념을 1차적으로 축출해보았다. 이제 한발짝 더 나아가서 '표현하는 것' '분명한 것' 그리고 '도식화하는 것' 사이에서 다시 한번 성질들의 공통점을 살펴보고 이를 압축해볼 여지는 없을지 생각해본다.
나는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 재미있으니까 나는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왜? 기분이 좋으니까 나는 도식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 깔끔하게 잘 보이니까 → 나는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
이와 같은 연습을 통해 나는 1) 표현하는 것과 2)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는 나의 작동원리를 알게 되었다.
이 작동원리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응용해볼 수 있다. 가령 나는 1) 표현하지 못할 때/않을 때 답답해할 것이고 2) 모호한 것을 마주했을 때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표현하지 못할 때', '모호한 것'이라는 개념을 이번에는 역으로 구체적인 예시들로 펼쳐보기로 한다. '회사에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업무지시가 한줄자리로 내려왔을 때'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쯤되면 앞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작동원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무엇을 자극했길래 내가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 감정이 들어온다. 나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예: 기분 좋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따라 나는 특정 행동을 취한다. (예: 더욱 표현한다. 분명한 것을 추구한다.) 혹은 역으로 특정 상황 (예: 질문을 하지 못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들은 나의 기분을 다운시킨다.
이렇게 자신의 작동원리에 대해 숙지하고 있음으로써 나는 나의 기분을 조금 더 잘 인지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 질문을 하지 못하는 회의에 참석해야해서 답답해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릴 때 나는 더 이상 '답답함'이라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여전히 답답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것을 좋아하니까 이 회의 주최자에게 나의 의견을 전달해봄으로써 답답함을 해소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